아산시장애인체육회에서 알려드립니다
2018년 펩시 음악상 시상식에서 클래식 분야 '올해의 베스트음반' 상과 '올해의 베스트 아티스트'상을 수상한 차인홍 교수는 미국 라이트주립대 음학학 교수입니다. 83:1의 경쟁률을 뚫고 얻어낸 자리입니다.
차교수는 태어난 지 1년 만에 소아마비를 앓아 하반신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9살 때 재활원으로 보내졌고 재활원에서 생활하던 초등학교 6학년 때 바이올리니스터 강민자가 사비를 털어서 재활원 아이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 주었습니다.(후에 강민자는 서울대 음대 교수가 됩니다.) 차인홍의 성공은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사람들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그 때 차인홍은 바이올린에 몰두해서 남들보다 실력이 탁월했습니다. 그는 충남도에서 개최하는 콩쿠르대회에 나가서 1등을 했습니다. 그러나 차교수는 중학교에 갈 형편도 되지 못했고, 재활원에서 중학교과정을 배웠습니다. 그러던 중 일본 장애인 단체가 5명을 초청하여 일본에 가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한국에 도착해서 일자리가 없던 그에게 고영일 전 목원대 교수가 현악 4중주단을 만들자고 제안하여 다시 바이올린을 잡게 되었습니다.
한국정립회관에 마물면서 차교수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주회를 열고 여러 교수들에게도 레슨을 받았으며, 중학교와 고등학교과정을 검정고시로 통과했습니다. 차교수는 베데스다 4중주단을 하면서 현재의 아내인 조성은을 만났습니다. 경희대 음대 생이었던 조성은은 도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차교수와 결혼을 결심합니다.
작고한 서울대 음대 신동욱 교수가 추천을 하여 신시내티음악대학에 합격을 하여 차교수의 인생은 도약하기 시작했습니다. 차인홍교수가 성공하기까지 두 명의 서울대 음대 교수를 만난 것입니다. 도약하기 위해서는 스승을 잘 만나야 합니다.
차교수는 신시내티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브루클린대 석사과정에 들어갔습니다. 차 교수는 각고의 노력 끝에 석사학위를 따고 1988년 귀국하여 대전시향의 악장으로 일했습니다. 6년 동안 시향악장과 강사로 일을 하면서 집도 장만했습니다. 그러나 친구의 보증을 잘못 서서 평생에 걸쳐 겨우 이루어 놓았던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1994년 차 교수는 악장직을 뒤로하고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에 입학하여 지휘분야 박사과정에 입학했습니다. 박사과정 때 생활은 아내는 바느질을 해서 생계를 이어갈 정도로 가혹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의 은혜로 도로시 클리츠먼을 만납니다.
당시 음악에 매진하는 차교수를 음대학장이었던 도로시 클리츠먼 교수가 각별한 애정으로 도와주었습니다. 그는 박사과정에 들어가면서 전공을 지휘분야로 택했습니다. 뉴욕 카네기홀, 시카고, 인디애나 폴리스, 마이애미 등에서 100여차례 실내악및 협주를 연주했고, 아스펜 국제음악제, 안톤베베른 탄생 100주년 기념음악제에도 나갔습니다. 이러한 경력을 토대로 오하이오주에 위치한 라이트 주립대학교 바이올린 교수겸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출처] 휠체어는 나의 날개, 한국 장애인 최초 미국 음대 교수, 차인홍 만남의 스토리-365 매일감사|작성자 THE 감사